고금리의 장기화는 단순히 기준금리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개인과 가계, 자영업자, 청년층, 부동산 시장, 소비 문화 전반에 걸쳐 구조적 충격을 주고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특히 중산층의 흔들림은 곧 경제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소비 위축 → 경기 침체 → 고용 불안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오늘은 지난 몇 년간 이어진 고금리 상황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불황의 여파를 알아보고자 한다.
장기 고금리 시대의 도래와 중산층의 흔들리는 재무구조
2022년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면서, 한국 역시 오랜 저금리 기조를 벗어나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 진입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5%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연준(Fed) 역시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 같은 금리 고정 상태는 단순히 금융시장의 문제를 넘어 가계 재무구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중산층 가계의 대부분은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고, 자산 취득 과정에서 금융 부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특히 고정금리가 아닌 변동금리를 택한 대출자들은 월상환액 급등으로 인해 소비 여력을 심각하게 잃고 있다.
또한 금융자산이 많지 않은 중산층은 예·적금 금리가 오르더라도 실질적인 이자 수익 증가를 체감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실질금리 환경이 아니면 금융 소득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렵다. 이로 인해 소득 대비 이자비용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중산층은 주택 구매나 교육, 의료비 등 중장기 계획을 축소하거나 연기하게 된다.
그 결과,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한 부동산 매각이 늘어나면서, 특정 지역에서의 주택 가격 급락 → 자산 격차 확대 → 하방위험 전가의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자산을 보유한 고소득층은 금리 상승기에도 고수익 투자 자산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가능하지만, 중산층은 이러한 기회를 활용할 여력이 없어 실질적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중이다.
고금리의 여파: 자영업·부동산 시장의 복합 불황
고금리 장기화는 자영업 시장에 매우 위협적인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시적인 소비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고정비와 이자 비용이 상승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아닌 제2금융권이나 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소상공인들의 경우, 연 10% 이상의 고금리를 감당하며 사실상 '좀비 사업체'로 전락한 곳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2024년 기준 1,000조 원에 육박하며, 이 중 30% 이상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고금리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은 단지 이자 지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매출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등 필수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곧 상권 전체의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급감하면서 주택 거래량이 전국적으로 줄고 있으며,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신축 아파트 가격 하락폭은 커지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들은 고금리 상황에서 버티기를 포기하고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이는 가격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환경은 다시 한 번 중산층에 타격을 준다. 집값 하락으로 인해 자산가치가 줄어들고, 대출금 상환 부담은 늘어나는 이중고 속에서 '주거 사다리'는 끊기고 있다. 청년층과 신혼부부 등 신규 진입자들은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더욱 어려워졌고, 중산층은 실질적으로 ‘자산 계급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구조의 변형: 합리적 소비에서 필수 생존소비로
고금리로 인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산층이 외식, 여행, 교육, 취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합리적 소비'를 하며 경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지출이 빠르게 줄고 있다. 대신 생필품, 주거비, 의료비 등 ‘필수 생존 소비’ 중심으로 지출 항목이 재편되고 있다.
2024년 기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계의 월평균 소비지출 증가율은 둔화되었고, 특히 교육, 문화·여가, 외식 지출 항목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식료품비와 주거비 지출 비중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이는 단순한 생활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가계가 ‘소비의 재정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생존적 선택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청년층의 소비 변화도 눈에 띈다. 취업난과 불안정한 소득 구조, 주거 불안이 결합되면서, 경험 중심 소비에서 최소 비용 소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외식은 줄고, 자취나 공유주택 선택이 증가하고 있으며, 중고 거래와 구독 서비스, 비용 절감형 소비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자동차, 고가 전자기기, 해외여행과 같은 ‘상징적 소비재’는 더 이상 필수적인 소비 항목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내수시장 전반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기업은 고가 제품보다 중저가 또는 구독형 모델 중심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으며, 이는 제조업과 유통업, 서비스업의 고용 전략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중산층의 몰락은 단지 계급 간 격차 심화나 통계적 수치 변화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소비 구조, 산업 전략, 미래 세대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전방위적 구조 변화로 자리잡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은 단순한 금리 수치 조정 이상의 정교하고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금, 대출, 주거, 소비 정책 전반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중산층의 몰락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